번역은 문화적 의미를 내포한 언어적 표현을 숙고해야 합니다

번역자는 원문과 번역할 언어(목표어)를 모두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이다. 그렇다고 해서 번역이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기계적으로 바꾸는 언어학적인 작업으로 만 생각하면 안 된다.

언어와 문화가 얼마만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지는 한 가지 예를 봐도 안다. 마 4:1-4절에 예수님이 40일 동안 금식하시고, 매우 시장하실 때, 마귀가 와서 “돌을 떡으로 만들라”(마 4:3)는 장면이 있다. “떡”에 해당되는 신약 그리스어는 통상적으로 “빵”(아르토스)이다. 이 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마 4:4, 비교 신 8:3) 라고 응수했다. 이 부분도 신약 그리스어는 “빵”(아르토스)이다. 우리나라 성경에는 그 “빵”이 “떡”으로 번역되었다. 지금은 “빵”으로 번역해도 괜찮을 정도로 “빵”을 많이 먹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빵”과 “떡”을 평행으로 놓고 생각하기엔 뭔가 어색하다. “빵”이라는 말 속에 문화가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빵”을 “떡”으로 바꾼 개역성경은 언어와 문화를 동시에 보면서 엄격하게 말하면, 번역 오류로 봐도 괜찮다. 왜냐하면 한국 문화에서는 “빵”이나 “떡” 모두 원래 본문의 취지와 벗어난 말이기 때문이다.

신약 그리스어인 “아르토스”나 인용한 부분인 신명기 8:3절에 “레헴” 모두 언어적인 면만 본다면 쌀로 만든 “떡”이 아니라, 밀로 만든 “빵”(bread)이고, 이 말이 쓰인 문화적 상황을 고려하면 그 “빵”은 당시 사람들에게 매일 먹는 양식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은 쌀로 만든 “밥”이다. 물론 “빵”도 지금처럼 제과점에서 기계로 많이 구워서 파는 그런 것이 아니라. 밀을 일일이 빻아서 돌판이나 흙으로 만든 용기에 구워서 만든 것이다. 지금 인도 음식의 ‘난’이나 아프리카 음식인 ‘자파티’같은 것이라고 보는 것과 더 유사하다. 우리 문화 속에서는 “빵”은 “밥”과 결코 바꿀 수 있는 그런 단어는 아니다. 그리고 “떡”은 우리 문화 속에서 절기나 출출할 때 먹는 간식에 불과하지, 주식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런 번역상의 문제를 예수를 믿고 얼마 되지 않아서 이어령 선생이 성경을 읽고 지적했는데,  언어와 문화와의 관계를 잘 아시는 분이라서 그런 문제를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고 본다.

“사람이 빵(떡)만으로 살 것이 아니요”는 표현 자체도 물론 글자 그대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은유적인 표현이다. 은유란 빵이라는 대상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만이 쓰는 언어적 장치들이다. 마치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요 힘이요’라고 하는 것과 같은 비유적 표현이다. “사람이 떡 만으로 살 것이 아니요”를  “사람이 밥만으로 살 것이 아니요”라고 번역했다면 지금까지도 그 전달하려는 의미가 더 풍성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한국 문화는 밥그릇 싸움이 심한 문화가 아니었던가? 주변에 문제가 터졌을 때, 지금도 우린 “다 먹고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이런 간단한 예를 봐도, 번역은 언어와 문화가 복합적으로 얽혀있음을 본다. 그리고 번역과정을 하나씩 그려보면,  첫째, 신약 그리스어 ‘아르토스’의 사전적인 의미는 ‘빵’(bread)이다. 둘째, 그 “빵”이 여기서는 밀로 만든 ‘빵’이라는 명사(물건)가 아니라 은유적 표현 즉, 식량이라는 말로 썼다. 셋째, 밀로 만든 “빵”이 아니라, 식량 혹은 양식이라면 그런 문화적 의미가 복합적으로 가미된 한국어 표현은 무엇인가? 라고 질문하면서 번역해야 한다. 복잡하고 어려운 학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번역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일반 사람도 쉽게 그려볼 수 있다. 이런 간단한 과정은 성경 번역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매주 설교해야 하는 목회자들이나, 성경을 현대적 상황 속에서 가르치는 사역자들이 과거의 성경을 지금의 상황에 보다 적절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늘 고민해야 할 영역이기도 하다. 언어와 문화와의 밀접한 관계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표현하고 전달한다면,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듣는 자 대부분은 오해하거나 추상적으로 들을 수 있음을 늘 알아야 한다.

번역된 성경을 가르치거나, 심지어 번역된 성경을 가르칠 때, 번역이라는 것이 단순히 언어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인 요소도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하는구나 라는 것만 동감한다면, 성경번역의 깊고 어려움 마음을 더욱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2019-01-03T07:48:27+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