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8 땅 끝? 도대체 땅 끝이 어디에요?

그리스도인이 된 후 늘 귀에 듣는 내용 중의 하나가 땅 끝까지 증인이 되는 내용이다. 그러면 “땅 끝”이 어디일까? 현대인의 눈으로 “땅 끝”을 생각하려니 그리 쉽지가 않다.  윌리암 캐리가 개신교 선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한 1793년 쯤에 생각한  “땅 끝”과 지금처럼 지구촌화 되어 있는 상황에서의 “땅 끝”의 의미는 상당하다 하겠다.  예수님은 자신도 가보지 못한 그 “땅 끝”을 제자들에게 위탁하고 승천하셨는데, 그 분의 마음 속에 “땅 끝”은 어디였을까? 당시 붙어있었던 이웃 사마리아조차도 자유스럽게 왕래하지 못하고, 갈릴리 변방만 두루 돌며 살았을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증인이 된다”는 말은 거창하다 못해 황당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기독교 역사상 예수님 다음으로 위대한 선교사였던 바울이 바라본 땅 끝은 로마제국의 변방인 스페인으로 쯤으로 생각했을 것이라고 학자들이 내다봤다. 그 후 지금까지 대략  2천년동안 땅 끝에 대한 생각은 그 말을 쓰는 사람마다 시대마다 달라져 왔다. 발달된 항해술을 통해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으로 태평양으로 활발하게 움직일 때마다 “땅 끝”이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태평양 하면서 의미가 달라졌다.  내가 선교사로 파송 받을 때인 1986년에 땅 끝은 파푸아(당시 인도네시아 이리안자야)였고, 한국 교회에 미전도족속(이 말도 정의하기가 어렵지만) 선교가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종족을 입양할 때 “땅 끝”은 티벳, 중동, 골짜기에 있는 소수부족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게다가 성경번역 선교를 하는 자들에게 “땅 끝”은 모국어로 성경이 없는 부족들을 의미하기도 했다. 스스로 복음을 전도 능력이 없는 곳을 미전도족속 혹은 땅 끝으로 하기도 하지만, 사실 지금 땅 끝이라고 부르는 북아프리카 소수부족들이 있는 베르베르 부족도 기독교 초기에는 인구 80%가 기독교인이었다. 기독교가 흥왕한 유럽이나 호주는 지금 기독교가  소수 종교로 전락한지 오래되어 다시 복음을 전해야 할 처지이다. 이래저래 땅 끝에 대해 속 시원히 말하려고 하니 자신이 없어진다. 선교 동원가들은 될 수있는대로 사람들의 호기심과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땅 끝”이라는 말을 별 생각 없이, 때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막 선전하여 사람들을 혼동하게 만든 일도 종종 일어났다.
“땅 끝”이라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사도행전 1:8절과 13:47 딱 두 곳에만 나온다. 그러나 사도행전 13:47절은 구약 성경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한 곳이라서(비교, 사 49:6). “땅 끝”이라는 말을 직접 쓴 곳은 신약 성경에서 이곳 밖에 없다. “땅 끝”에 대한 복잡한 논쟁은 제쳐두고, 지금 우리들은 둥근 지구에 살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땅 끝”을 장소적이고 지리적으로 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복음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모든 곳을 “땅 끝”으로 봐야 한다. 그러면 한국에도 ‘땅 끝’이 구석구석에 있고, 저 먼 나라에도 ‘땅 끝’이 얼마든지 차고 넘친다. 또 이런 관점으로 보면 “성령이 임하시면 땅 끝까지 증인이 된다”는 말은 둥근 지구에서 “땅 끝”은 저 멀리가 아니라 내가 있는 곳이다. 어차피 한바퀴 돌고 나면 제자리에 온다. 그래서 “땅 끝”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임하면, 우리가 둥근 지구 위 어디에 살든지, 어느 곳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증인으로 살아야 하는 그곳이 땅 끝이 된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땅 끝까지 나의(예수)의 증인이 된다”는 말도 순차적이고 지리적 확장 만을 의미하였다고 보기에 미흡하다. 한국식으로 하면, 서울, 남한, 북한, 세상 전부라는 표현과 같이 전방위적으로 온 세계에 뻗어 나가는 것이 더 부각되는 말이다. 자. 그럼 나에게 지금 이 순간 “땅 끝”은 어디인가? 현대에 합리적인 대답은 내가 있는 그 곳, 그 현장, 그 일터, 그 시간…바로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드러나야 한다면 그곳이 땅 끝이다.

2019-01-03T07:48:06+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