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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2019-11-27T11:00:14+09:00


에스더 왕비가 살던 수산성 SUSA (1)

근동성경
작성자
요엘 이
작성일
2019-02-26 13:52
조회
389
에스더왕비가 살던 수산성, 다니엘의 을래 강변



수산을 복원한 그림 (다리우스 대제 때)
사진 참조: http://danamotor.ir/Susa_Apadana_Palace_Temple_Model.jpg

수산성은 오늘날 이란 남부의 쿠제스탄주에 위치한다. 현재의 이름은 수쉬 Shush 로서, 53000명의 인구를 가진 소읍이다. 이 작은 수산성은 한 때, 고대 엘람족의 수도였고, 페르시아의 아키메네스 왕조(BC 550년-330년)가 겨울 수도로 삼을 정도로 유명했던 곳이다. 신약의 오순절 때, 엘람에서 온 자들이 있었는데, 이는 수산성에서 온 유대인들로 추정이 된다. 예루살렘까지 오려면 만 4개월을 걸어와야 했을 것이다(행2:9, 스7:9).
수산은 티그리스강에서 250km 정도 떨어졌고, 테헤란에서 남서쪽으로 486km 아래에 위치한다. 찬란한 역사를 가진 수산의 문명은, BC 4세기 알렉산더의 침공으로 처참히 무너진다. 지금은 그 부숴진 잔재 만이 언덕에 서글프게 남아있다. 페르시아의 수산성은 성경과의 지대한 연관성을 가진다.


여성 가이더가 페르시아시대의 수산성에 대해서 설명한다-뒷편에 보이는 곳이 무너진 수산평지로, 예전엔 거대한 건축이 세워졌던 곳이다.
에스더서의 대부분이 수산 성에서 일어 났고, 아하수에로 왕의 대관식과, 에스더가 여왕으로 간택 된 곳이다(에2:8, 17). 느헤미야가 술관원직을 수행한 곳이며(느1:1), 다니엘이 이상을 본 곳이기도 하다(단8:2).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때, 수산 성의 아하와 강변(Ahava Canal스8:21)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돌아오는데, 그 출발지가 수산성이었다(스7:1,9). 수산은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다니엘서등의 배경이 되는 도시다.
수산의 아하와 강으로 추정되는 곳-이곳에서 에스라가 금식을 선언하고 귀환한다
1901년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이곳을 탐사하다가 함무라비 법전을 발굴하고는, 슬그머니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져갔다. 이 함무라비 법전은 원래 도시 바벨론에 있었는데, BC 13세기경 동쪽으로 355km나 떨어진 수산성으로 옮겨 진 것이다. 이는 당시 수산성이 얼마나 중심적인 도시인가를 알려주는 단서다. 고레스의 아들 캄비세스2세가 도읍지로 삼은 이 도시는, 과연 어떤 곳이었을까?


기원전 18세기의 함무라비 법전-자료참고 http://maritimehistorypodcast.com/ep-004-mesopotamian-merchants/
수산 평원에 있는 다니엘의 무덤  
수산 평원의 원추형의 다니엘의 무덤 
무슬림들이 수산에 이 무덤처소를 보존했다.
다니엘이 어디에서 죽었을까? 
오늘날 수산의 샤브르강 동편에는, 원추형처럼 생긴 다니엘의 무덤이 있다. 그의 무덤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다니엘이 여기서 사망했다는 말 때문이다. 고레스가 유대인을 해방할 때, 다니엘이 수산성에 왔으며, 6세기에 이곳에서 죽었다는 내용 때문에, 다니엘의 무덤을 이곳에 세운 것이다. 포로기 때에 바벨론에 끌려온 유대인들이 수산지역에 대거 정착했다. 아마도 수많은 유대인 포로중에 다니엘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 다니엘 후반부 인생은 수산을 중심으로 사역한 것이 맞다. 이 다니엘의 매장 장소에 대해선 아직까지 논란이 있으나, 유일하게 그의 무덤으로 명기된 곳이 수산이다. 에스라 8:2에는, 에스라와 다니엘이 귀환자 명단에 나오는데, 동명이인일 수도 있다.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은 오늘날도 수산성의 다니엘 무덤을 꾸준히 방문한다.
다니엘의 무덤 내부- 이란 무슬림들은 다니엘을 선지자로 믿기에, 그의 무덤에 와서 참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