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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2019-11-27T11:00:14+09:00


페르시아의 악메다 [TELL HAGMATANA]에서 고레스 왕의 문서가 발견되다 !

근동성경
작성자
요엘 이
작성일
2019-02-26 13:55
조회
262
 페르시아의 악메다 [텔 하그마타나, Tell Hagmatana]에서 고레스의 문서가 발견되다 !     
텔하그마타나 [악메다의 올드시티]에서, 고레스왕의 법령을 다리우스가 발견했다.
고레스가 내린 조서가 악메다에서 발견되었기에, 2차 예루살렘 성전은 완공될수 있었다.  조서가 보관된 곳은, 메대의 수도였던 악메다였다. '텔 하그마타나'라고 불리우는 곳에서, 이 문서를 찾아냈다. 방해 공작으로 중단된 성전 건축이, 보관된 문서가 나타나자,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메대도 악메다Ecbatana 궁성에서, 한 두루마리를 찾았으니, 거기 기록하였으되, 고레스왕 원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대하여 이르노니…”(스6:1-3). 
다리우스는 당장에 건축 할 것을 명했고(스6:12), 515(516년)에 가서 성전을 완공했다.
오늘날의 하메단의 텔 하그마타나(Tell Hagmatana)의 전경 
하메단을 거닐다 보면, 이란 국기들이 힘차게 휘날리는 곳이 보인다. 북적거리는 시장을 지나, 걸어 내려가면 시내 버스들이 돌아서는 곳에, 텔 하그마타나(Tell Hagmatana) 라는 유적지가 있다. 약 20헥타르의 규모로서, 이곳이 하메단의 올드시티다. 여기에 성서시대의 메대와 페르시아의 중대한 유적들이 숨어 있다. 역사적으로 페르시아의 아키메니드, 파르티안, 사산조, 무슬림 왕조의 시대가, 머물던 곳이다. 옛 유럽에서 내려온 아리안 족이, 기원전 17세기부터 이 장소에 터전을 세웠다. 그러나 이곳은 아직도 복원되지 못한 채, 발굴 중이다.
텔하그마타나의 입구 
텔 하그마타나는, 지푸라기가 섞인 벽돌로 세워져 있다. 이집트에서도 짚이 섞인 진흙 벽돌이 있는 것을 보면, 이는 근동 세계의 보편적 문화였음을 알게 한다. 벽돌 성채의 높이는 2.5m이며, 내부의 길이는 13.7m로서, 잘 보존되어 있다.
길은 자갈로 깔려 있고, 가옥 형태의 도시를 형성한다. 이 근처에서 1세기경의 파르티아인의 공동묘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서쪽에는 사자문 Lion gate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거대한 사자상을 발굴했다. 사자는 아키메네드 왕조를 대표하는 짐승이다.
이 사자상은 페르시아의 건축 양식이다. 알렉산더 대제는 이 사자상을 기원전 336년에 세웠다. 그의 동료의 죽음을 기념해서 세운 것이다. 후에 사자상들이 부숴지고, 깨지면서, 오늘날 초라한 모습이 되었다. 오늘날 하메단 주민들은, 이 사자상에 올리브 기름을 부어 발라주면, 좋은 남편과 아내를 만날 수 있다라는 미신으로 인해, 일그러진 사자상의 몸통은 올리브 기름으로 번들거린다.
옛 악메다의 성문에 세워진 사자상이 세월이 흘러 훼손된 모습 
헤로도투스는, 이 언덕에 아키메네드 왕조의 궁전과, 보물전각과, 군병들의 집결지가 있다고 기록했다. 한때 메대족의 수도로서, 견고한 성채였는데, 기원전 550년에 페르시아가 점령하여, 이곳을 페르시아의 여름 수도(Summer Capital)와 보물 창고로 삼고, 메대를 병합했다. 평생 보물이 가득했던 이 도시에서 살던 유대인 왕비 에스더는,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하메단(악메다)의 텔 하그마타나는 넓은 평지처럼 구성되어 있고, 약 30m 높이의 언덕(텔)을 이루고 있다. 성벽이 없는 도시로서의 특징을 가진 곳이다.  이 유적지가 중요한 것은, 이곳에 페르시아 제국의 황실 문고가 있었다는 점이다.
복원중인 텔하그마타나 유적지 
“메대도 악메다 궁성에서 한 두루마리를 찾았으니..”(스6:1). 고레스가 통치한 첫 해에, 그는 유대 민족을 본토 귀환시키는 칙령을 발표한다. 이로서 유대인들은 70년간의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유대인들은, 성전의 기초와 제단만을 쌓고, 완성하지 못한 채, 수년간 방치했다. 학개 선지자가 나타나,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 성전을 지으라고 권했다. 성전 건축의 주 재료의 90%가 석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무를 베라고 명하셨다. 예루살렘 주민들은 저마다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학1:8). 그후 성전 건축은 활기를 띄며 완성되어졌다(학2:9). 레바논의 백향목이 아닌, 예루살렘의 목재가 씌여진 것이다. 아마도 당시 많은 부자들이 이 나무를 베어내는 광경을 통해, 큰 감동을 받고, 저마다 성전 건축에 동참한 것이 아니었을까…? 나무를 베어 성전을 지으려는 열심을 본, 부유층들이 변화된 것 같다.
악메다에서 발견된 고레스 칙령 두루마리로 인해, 다리우스 왕은, 수년간 묶였던 법령을 풀고, 고레스가 발포한 것 처럼, 국고에서 돈을 지불하여, 예루살렘 성을 짓도록 윤허했다.  유대인들은 곧 성전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텔하그마타나의 전경- 텔하그마타의 지하도시를 양철지붕으로 씌여 보존하고 있다.  
이곳을 거닐면, 에스더 왕비가 느꼈던 바람이 몸에 다가와 휘감긴다. 옛 메대족의 성은 외롭지만, 다정한 곳이다. 페르시아 왕궁의 보물들이 악메다나성에 있었다(스6:2). 그곳에 특별 문서 보관소 (Archive)가 있었고, 고레스왕 통치 1년에 기록된 두루마리를 발견함으로서, 예루살렘 성전이 지어니는 변화가 일어났다.
고고학자들이 이곳을 발굴하다가, 다리우스 것과 아닥사스다2세(기원전 404-359년)것의 금판을 발견했다. 다리우스 것에는 악메다의 건축 내용이, 3가지 언어로 기록됐고, 아하수에로 왕 것도 후에 발굴되었다. 현재 자료들은 이란의 Bastan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알렉산더 대제는 두번이나 방문하여, 하메단의 금과 은을 약탈해갔다. 신전에 있던 금벽돌과 은벽돌 까지도 뽑아 갔고, 후에 헬라의 군장들까지 와서, 더 많은 왕실의 보화를 약탈하여, 악메다는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