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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2019-11-27T11:00:14+09:00


맛사다- 맛사다는 두번 함락되지 않는다

근동성경
작성자
요엘 이
작성일
2019-02-26 13:57
조회
454

 
맛사다: 맛사다는 두번 함락되지 않는다. Masada never fall again!
맛사다는 사해 해변길에 위치한 천연요새이다. 원래는 마카비 시대 때에
요새로 사용되었다가, 헤롯 대제에 의해 재 건축된 곳으로, 헤롯가의 별장으로 사용했다.
유대인 부모들은 자녀들과 이곳을 자주 방문한다.
유대의 저항 정신을 배워가기 위해서다.
어떤 유대인들은, 자녀를 데리고 정상으로 올라가는 약 3km되는 뱀길 Snake path을 힘겹게 오른다.
사해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오른편으로 거대하게 솟아 오른 구조물
지형을 보게 된다. 바로 맛사다 요새이다.
요새의 높이는 약 400 미터이며, 사해가 해저 402미터에 위치했기에, 맛사다는 거의 해수면과
비슷하다. 절벽처럼 보여지는 고원 위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넓은 평지가 나타난다. 축구를 해도
좋을 듯한 넓이다. 스위스제 케이블카라지만 좀 낡아 보여서 왠지 침울해진다.
동서의 길이가 약 240미터, 남북길이는 약 600미터로서 마름모 꼴의 형태로 되어 있다.
헤롯은 이곳에 성벽을 덧 쌓았다. 1300미터나 되는 성곽을 만든 것이다.
이곳에 올라보니, 거대한 물저장고가 우선 놀라웠다. 어디서 물을 이끌어 왔을까?
풀장, 공중 목욕탕, 사우나탕 온탕과 냉탕이 준비되어 있다.
맛사다 요새 둘레에는 수로가 있다. 마치 페트라로 들어가는 곳에 물수로가 있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지형적인 특성을 살려서, 물이 들어오도록 했고,  물저장고에 모아 사용했다.
70-73년 로마에 대항할 때, 물이 4만톤이나 저장 되었지만, 다 사용하지 못했다.
회당이 있었다. 비잔틴 시대의 교회터도 남아있다. 비잔틴 시대의 교회의 문은 동쪽을 향해 나있는데,
그것은 메시아가 동쪽으로부터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플라비우스 실바가 이끄는 로마 10군단에는 약 10,000명-15,000여명의 군대가 맛사다를 포위했다. 제대로 공격을 할수 없게 되자, 맛사다 뒤편에 토성을 쌓고, 공격을 했다.
지도자였던 엘리에셀 벤 야일의 설교는 너무도 유명하다.
유대인 노예를 부려서 쌓은 인공토성이 지금도 남아있고, 로마 군단이 주둔했던 병영기지가 존재한다.
"우리의 아내와 자녀들이 로마군에 의해 짓밟히는 것을 볼 수 없다.
생명을 얻으려, 하나님의 백성이 로마인의 노예가 되어선 안될것이다.
요새를 모두 불태워버리되, 창고의 식량만은 그대로 두도록 하자.  우리가 먹을것이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노예가 되느니 죽음을 선택했다는 결단을 보여주자." 라고 외쳤다.
이 연설이 끝이 나고, 남편들은 아내과 자식을 죽이고, 그 남편들을 제비로 뽑아 한 사람이 나머지
아홉을 죽이고, 최후에 남은 자가 요새를 불지르고, 자결을 했다. 이른 아침 로마군이 점령해보니, 모두
죽고, 집단 죽음을 피해 살아남은 두명의 늙은여인과 한 아이가 있었다.
첫날 로마군은 성벽에 나무다리를 놓고는 건너갔으나, 성은 너무도 적요했다. 아무런 저항을 받지 못했다. 기원후 73년 4월 15일에 있었던 일이다.
이 내용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유다 전쟁사”에서 알려주는 내용이다.
“This is a kind of victories!” -이 역시 또다른 승리의 방법입니다!-
“Massada, Never Again!” -다시는 맛사다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로마인에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다.
두 여인과 5명의 아이들이 살아남았다.
맛사다가 본격적으로 발굴된 것은 1963년부터 시작되어, 전 세계의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인해서 1965년에 완료 되었다. 예루살렘 히브리대 이갈 야딘 교수의 지도하에 맛사다가 탐사되었다.
2005년에 이곳에 그의 이름을 딴 이갈야딘 맛사다 기념관이 건립되었다.
이스라엘 교육의 살아있는 장소롤 이용한다. 사관학생들도 올라와 맛사다는 다시 함락되지 않는다라고 외친다. 유다 청소년들이 올라와 하루를 묶고 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