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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2019-11-27T11:00:14+09:00


가인의 불평인가 후회인가?

성경원어
작성자
이 태훈
작성일
2019-05-31 12:23
조회
359
가인의 불평인가 후회인가?(창 4:8-14)

가인은 하나님께 제물을 거부당하고 분을 참지 못한다(4-5절). 그는 죄에 사로잡히지 말고 죄를 다스리라는(6-7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동생 아벨을 쳐 죽인다. 본문에는 가인이 동생 아벨에게 말한 후, 바로 그들이 들에 있다는 장면으로 이어진다(8절). 가인이 아벨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나오지 않는다. 사마리아 오경이나 칠십인 역은 가인이 아벨에게 “우리가 들로 나가자”라는 말을 한 것으로 번역한다. 아마도 서기관이 필사할 때 서로 다른 줄에 있던 “자기 동생(아히우)”이란 단어가 겹쳐 보이는 바람에, 시각적 착각을 일으켜 첫 단어 이후의 내용을 빠뜨리고 다음 단어로 바로 넘어가는 실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Homoioteleuton). 문맥을 고려하여 바른성경이나 칠십인역을 따르는 가톨릭성경은 이 구절을 넣어서 번역한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시니, 가인이 “모릅니다. 내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대답한다(9절). 이에 하나님께서 다시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라고 가인에게 물으신다. 하나님의 질문은 아담에게 했던 질문을 연상시킨다(참 3:9-13). 아담에게 하셨던 질문과 마찬가지로 이 질문은 아벨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가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는 질문이었다(참조 레 19:17-18). 가인은 하나님의 질문을 받고 바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했어야했다. 그러나 가인이 회개의 기회를 버리고 변명으로 일관하자 하나님은 곧바로 가인의 악행을 직접 드러내신다.

“네 동생의 피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은(10절),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땅에 묻었다는 것을 추측하게 해준다. “호소하다(차아크)”는 말은 목숨의 위협 앞에서 구원을 외치는 말로 “외치다, 부르짖다, 도움을 간구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외치고 있는 대상이 “하나님(내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는 부르짖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소리가 부르짖다”는 말이 어색하게 들린다. 따라서 소리로 번역되는 “콜(qol)”을 관심을 끄는 감탄사로 이해하여, “들어라, 네 동생의 피가 내게 부르짖고 있다.”로 번역할 수 있다. 부르짖는 주체가 “소리”가 아니라 “피”가 되면 이 사건의 실체가 분명히 나타난다. “피”는 생명을 상징하는 말로 목숨을 빼앗는 살인죄를 의미한다. 동생의 피가 부르짖는다는 것은 그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을 분명히 해준다. 가인이 아벨을 살해했고, 그가 흘린 피가 억울한 죽음에 대해 땅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가인의 살인에 대해 설명할 때 “아벨”이란 이름 대신에 “동생”이란 단어가 주로 사용된다. 아마도 아벨이 모든 사람의 운명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벨(hebel)의 원 뜻은 “호흡, 숨”이란 뜻으로 잠간 있다 사라진다는 의미를 갖는다. 아벨은 잠시 살다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아벨은 모든 사람이 당하는 운명을 대표하는 인물로 묘사되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은 잠시 살다 가는 운명을 갖고 있고, 어떤 경우에는 억울하게 목숨을 빼앗기고 사라지는 사람들도 생긴다. 아벨이 이런 모든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11절은 “그러니 이제(hT'Þ[;w>, and now)”라는 말로 시작된다. 아벨이 땅속에서 외치는 억울한 죽음에 대한 조치를 이제 하나님께서 취하시겠다는 것이다. 아벨을 죽인 가인의 살인죄에 대한 일련의 법적 조치들이 나온다(11-12절). 가인에 대한 첫째 징벌은 땅이 저주받아 가인이 땅을 경작해도 합당한 소산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저주는 뱀(3:14)과 땅(3:17)에 대한 저주를 연상시킨다. 가인에 대한 최종 징벌은 그가 땅에서 도망 다니며 떠도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징벌은 살인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고로 죽인 경우에 해당되는 것처럼 보인다. 사고로 사람을 죽인 경우에는 보복자(고엘)를 피해 “도피성”으로 도망갈 수 있기 때문이다(참조 수 20:1-6; 민 35). 가인은 어디로 가든지 보복자를 피해 살아가는 것처럼 늘 불안한 삶을 사는 징벌을 당하게 될 것이다. 공동체에서 쫓겨나 늘 불안한 가운데 사는 것은 돌에 맞아 죽는 징벌보다 더 가혹한 저주일 수도 있다(참조 시 109:9-10).

13절의 번역에 따라 다음 문맥이 정해진다: "가돌 아오니 민네소". 히브리어 아온(‘aon)은 “잘못”과 그 결과 주어지는 “징벌” 등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나사(nasa’)는 “짐”같은 것을 목적어로 받을 때에는 “지다”의 의미를 갖고, “죄”같은 것을 목적어로 받을 때에는 “용서하다”의 의미를 갖는다. 이 경우들에 따라 두 가지 번역이 가능하다.

1) “(그것을) 지기에 내 징벌이 너무 큽니다.”

2) “(그것을) 용서하기에 내 잘못이 너무 큽니다.”

첫째 경우 가인이 자신의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징벌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비양심적으로 보인다. 사람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징벌에 대해 불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약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징벌에 대해 불평하는 경우는 없다. 둘째 경우 죄를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문제 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참조 삼하 12:1-14). 어떤 죄도 하나님이 용서하실 수 있고, 하나님이 용서 못하실 정도의 큰 죄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인의 말은 자신의 죄가 용서받기에는 너무 커서,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두려움의 고백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징벌이 너무 큽니다.”라는 의미보다(참조 레 16:22), 하나님이 “용서하시기에 잘못이 너무 큽니다.”라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참조 출 34:7; 호 14:3). 가인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 후회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물론 본문은 ‘징벌을 지는 것’과 ‘죄를 용서하는 것’의 두 가지 의미가 서로 보충적으로 사용되도록 의도하는 것 같다. 그러나 가인이 후회의 고백을 하는 것으로 이해할 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표’를 주어 보호해주시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