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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2019-11-27T11:00:14+09:00


"가인의 표"에 대하여

성경원어
작성자
이 태훈
작성일
2019-06-16 06:13
조회
364

“가인의 표”에 대하여(창 4:15-24)


하나님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가인에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만일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7배나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15절상). 하나님이 동생을 죽인 살인자에게 보호자로 나서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13절의 가인의 말을 “내 징벌이 너무 큽니다,”라는 불평의 말보다, “내 잘못이 너무 큽니다.”라는 후회의 말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가인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 후회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인을 위한 보호자가 되신 것이다. 여기서 일곱 배는 문자 그대로 일곱 배의 벌을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완전수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이 가인의 죽음을 완전하게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이다.

하나님은 가인을 죽음으로부터 완전히 보호하시겠다는 의미로 “표(’ot)”를 주신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인에게 주신 표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먼저 구약에서 표(’ot)는 하나님이 출애굽 때 베푸신 이적을 의미한다(출 10:1-2; 시 78:43; 105:27; 렘 32:20; 참조 사 66:19).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이적을 베풀어 구원하신 것은 자신의 백성으로 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가인은 표를 받은 후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삶을 살게 된다(16절). 따라서 가인에게 주신 표를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이적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없다.

둘째는 표를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깃발과 같은 표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시 74:4). 이스라엘 백성은 진을 칠 때 각각의 지파들을 나타내는 표, 즉 깃발을 내걸었다(민 2:2). 하나님이 가인에게 주신 표는 정체를 보여주는 이런 표식이었을 것이다. 가인을 공격하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것이라는 경고의 표식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이 표를 깃발의 문양과 같이 몸에 새긴 문신 같은 것이나, 범죄를 저질러 공동체에서 쫓겨날 때 그 정체를 나타내기 위해 머리를 민 것 같은 표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보호의 표를 주셨지만, 그는 여호와에게서 떠난다(16절). 본문은 가인이 여호와에게서 쫓겨난 것이 아니라(참조 14절), 그가 여호와를 떠났다고 말한다. 가인이 왜 여호와를 떠났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하나님의 약속만 가지고는 불안을 느꼈던 것 같다. 가인이 여호와를 떠나지 않았다면 아담을 잇는 후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가인이 여호와를 떠나 머문 곳을 ‘놋’ 땅이라 부른다. 여기서 ‘놋’은 지명보다 가인이 처한 상태를 말하는 것 같다. 창세기에서 동쪽은 대체로 하나님을 떠나는 방향을 의미한다(창 3:24; 11:2; 13:11). 놋(nod)은 14절의 “유리하다(nud)”는 말과 어근이 같다. 따라서 놋 땅은 지명이라기보다 여호와를 떠난 불안한 삶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을 떠난 가인은 아내와 동침하여 에녹을 낳는다(17절).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가인이 아담과 같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후손을 잇는 일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1절; 참조 1:28). 가인은 성을 쌓고 아들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을 에녹이라고 부른다. 에녹(henok)은 “바치다(hanak)”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에녹은 “바쳐진 것(성)”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본문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우리는 가인이 여호와께 성을 바쳤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성은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곳이다. 문맥으로 볼 때 하나님이 가인에게 주신 보호의 표가 성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가인은 보호의 표인 성을 짓고 하나님께 바친다. 이 성은 후에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도피성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참조 민 35; 신 19:11-13; 수 20:1-6). 가인은 성이라는 보호의 표를 통해 불안정한 놋 땅에서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가인은 안전한 성에서 후손을 낳으며 문명을 발달시킨다. 그러나 여호와를 떠난 가인은 문명을 자신을 보호하는 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복수의 수단으로 왜곡시킨다.

우리는 가인의 후손이 발달시킨 문명의 본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인의 후손 가운데 야발은 목축문명을 발달시키고(20절), 유발은 수금과 퉁소 등 음악문명을 발달시키며(21절), 두발가인은 구리와 쇠로 청동기와 철기문명을 발달시킨다(22절). 모든 것이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문명의 발달이었다. 그런데 가인의 후손 가운데 라멕이 두 번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라멕은 아담의 7대손으로 후손 가운데 특별한 주의를 끈다. 첫째는 라멕이 아다와 씰라라는 두 아내를 맞았다는 것이고(19절), 둘째는 그가 두 아내에게 복수의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23절). 우리는 라멕을 통해 가인의 후손이 발달시킨 문명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라멕은 두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하와를 아내로 주시면서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말씀하셨다(창 2:24). 라멕은 두 아내를 맞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혼인의 질서를 최초로 어긴 사람이다. 후에 족장들이나 왕들도 일부다처제를 유지하기도 했지만, 원래는 일부일처제가 하나님이 주신 혼인의 원리이다. 성경이 일부다처를 명시적으로 비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일부다처로 인한 아내들 간의 다툼, 자식들 간에 벌어지는 싸움 등, 끊임없이 야기되는 문제를 언급한다. 성경이 일부다처제를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둘째로 가인의 문명의 성격을 라멕이 부르는 ‘복수의 노래’에서 엿볼 수 있다(23절하-24절). 라멕이 부른 노래는 평행법의 시 형식을 가진 노래로, 복수한 것을 아내들에게 자랑하고 다짐하는 내용이다. 라멕은 상처 때문에 사람(남자)을 죽이고, 맞은 자국 때문에 아이를 죽였다고 자랑한다. 만일 가인을 위해 7 배의 복수가 행해진다면(참조 15절), 라멕을 위해서는 77배의 복수가 행해질 것이라고 다짐한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주신 보호의 문명의 표를 라멕은 복수의 문명으로 왜곡시킨다.

가인에게 약속하신 일곱 배의 벌은 문자그대로가 아니라 완전한 공의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출 21:23-25; 레 24:18-20; 신 19:21)으로 갚으라는 “동해복수법(lex talionis)과 비교될 수 있다. 이 법은 당한 것 이상으로 복수하지 말라는 복수 방지법이다. 그러나 라멕은 자기가 당한 것보다 무한대로 복수할 것을 다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보호의 문명의 표를 복수의 수단으로 왜곡시키는 것이다.

이로서 가인은 아담을 잇는 하나님의 자손에서 멀어지게 되고, 아벨 대신 셋이 여호와를 섬기는 자손이 된다(25-26절). 성경은 복수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하고(신 32:35; 참조 롬 12:19), 예수님은 라멕과 같이 77배의 복수가 아니라 77번 용서하라고 말씀하신다(마 18:22).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호의 표로 문명의 힘을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보호의 표를 남에게 복수하고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가인의 후손에 속하는 행위가 된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국가나 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힘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힘만 추구하고 그 힘을 오용하면 스스로 가인의 후손에 속하는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