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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과 메시지

성경활용
작성자
제순 정
작성일
2019-02-25 11:46
조회
301
‘의사소통하다’는 말은 뭔가 나누려는 뜻이 담겨있는 메시지를 다른 사람이나 단체와 함께 공유하거나 교환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의 ‘메시지’는 말이나 문자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메시지를 전달할 때 말을 한다면, 상대방이 잘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쉬운 말을 쓰기도 하고, 때로는 반복하기도 하고, 중요한 부분에서는 힘을 주거나, 표정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물론 무례하거나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은 상대방이 알든지 모르든지 자기 멋대로 하겠지요? 그러나 상대방에게 꼭 전하려면 그런 무례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에 글로 전달하려고 한다면, 상대방이 잘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아름다운 문장이나 아름다운 말을 상황에 맞게 잘 선택해서, 논리적으로 잘 배열하고, 체계적으로 표현하려고 애쓸 것입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이유도 백성들이 관리들에게 잘 전달하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왕실이나 관리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의도를 백성이 오해 없이 잘 알아 들어 말을 잘 듣게 하려는 통치적인 의미도 있을 수 있습니다. 글이란 원래 이런 것이잖아요?
이렇게 정상적인 의사소통 과정을 보면 말하는/혹은 글 쓴 사람이 있고, 듣는/혹은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하는/글로 쓴 사람을 ‘화자/저자’ 라고 하고, 상대방을 ‘청자/독자’라고 어려운 한자어로 쓰기도 합니다.
자 아래 그림처럼 파란 옷을 입고 있는 사람(화자/저자)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말을 녹색 옷을 입고 있는 사람(청자/독자)에게 전하려고 할 때 다음과 같은 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화자/저자가 청자/독자에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고 말하겠지요? 너무 뻔한가요? 그런데 이렇게 말했다고 상상을 해 보세요. “하나 사랑 님은 다 이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글자와 정확하게 일치하지만 순서만 달랐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습니다. 왜 그렇죠? 맞습니다. 문법이 틀렸습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알아 들을 수 있는 언어적인 약속(문법)을 어겼습니다. 그 약속대로 하지 않고, 다르게 하면(문법이 맞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할 때 사람은 터미네이터처럼 기계적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말을 합니까? “사랑”이라는 말을 잘 전달하려고 표정과 제스처로 아주 과장되게 그려보면서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요? 게다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을 할 때 말하기 좋은 장소와 환경과 시간도 맞추겠지요. 자, 이제 위에 있는 그림을 다시 한 번 보면 의사소통 과정 안에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더 크게 보일 것입니다.
• 형식 :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말이 서로 통하는 형식이 필요합니다.
• 내용 :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 속에 담긴 전달하려는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 의도 : 화자/청자는 이 말을 청자/독자에게 말하려는 의도와 목적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 상황 : 이런 말을 할 때의 상황들(시간과 장소…)
이 말을 조금 배웠다고 하는 분들은 다음과 같은 표현할 것입니다.
• 형식 :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언어적인 형식을 갖춘 텍스트
• 내용 :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말 속에 담긴 의미론적인 내용들
• 의도 : 화자/청자는 이 말을 청자/독자에게 의사소통의 목적이자, 실제 전하고자 하는 화용론적인 의도
• 상황 : 실제 의사소통이 일어난 콘텍스트. 
의사소통을 한다는 말은 이 네 가지 요소를 함께 고려하면서 하는 과정임을 우린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상황이 또 매우 중요함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예를 봅시다. 어떤 사람이 ‘문이 열렸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시다. 자 우리가 살펴본 대로 이 사람의 문장을 한번 봅니다. 문장이 짧고 간단하고 내용 또한 간결합니다. 우선 형식(문법)을 보면 ‘문(명사)+이(주격조사)+열렸다(술어, 열리다의 수동과거)’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면 조금 더 복잡해집니다. 영어로는 아마 ‘The door is/was open’ 이라고 해야 합니다. 한국어로는 ‘열렸다’라는 동사(술어)에 영어의 ‘be’ 동사가 포함되어 있는데, 영어 형식은 ‘be’라는 동사를 반드시 써야 합니다. 게다가 관사(The/혹은 A)도 써야 합니다. 그래서 영어 형식은 ‘관사 (the) +명사 (door) +술부 (is/was) +형용사 (open)’ 이라는 해야 합니다. 전달하려는 의미는 “그 문”(화자가 말하려는 토픽(topic)”이 ‘열렸다’(서술, comment)입니다.
이렇게 복잡하게 분석을 해도 번역했다고 해도 이 문장 자체가 말하는/글 쓴 사람의 의도가 다 전달되었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과 같은 상황 속에서 방금 우리가 말한 같은 문장을 쓰고 있는데 이럴 때 전하는 의미가 정말 무엇인지 저와 함께 생각해 봅시다.
• 상황 1 (A와 B가 한 방에 있는 상황)
A “여기가 왜 이렇게 춥지?”
B “문이 열렸다”
[방이 추운 이유에 대한 답변이자, 원하면 문을 닫아도 된다….등 등]
• 상황 2 (A가 공부하고 있는 방으로 B가 들어 옴)
A “문이 열렸다.”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나, 공부에 방해가 된다, 조용했으면 한다..등 등]
B “그래? 미안.”
>• 상황 3 (A와 B가 큰 논쟁을 벌임)
A “문이 열렸다.”
[더 이상 논쟁 끝내고 싶다. 나갈테면 나가라…등등]
B “좋아, 내가 떠날게”
• 상황 4 (A는 이미 B와 함께 직장을 떠났음)
A “나 돌아와 일하고 싶어.”
B “문이 열렸다”
[언제든지 올 수 있다. 길은 많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등등]
• 상황 5 (A와 B는 선교전략에 대해 토론 중)
A “어떻게 하면 좋지?”
B “문이 열렸다.”
[망설이지 말고 지금 가라. 곧 닫힌다. 최고의 시간이다. 하나님의 뜻이다…등 등]
“문이 열렸다”라는 간단한 문장을 의사소통 상황 속에서는 상황에 따라 말하는 사람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나 의도가 전혀 다르고 새롭고 통합적인 의미가 만들어 감을 볼 수 있지요? 언어학적으로 형식이 같은 문장이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만들어진 셈입니다. 이런 효과들을 조금 유식한 말로 ‘화용론적인 효과’(pragmatic effect)라고 합니다. 물론 언어마다 이러한 효과는 다르게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다른 언어를 배울 때 한국어와 외국어와의 ‘표현이 다르다’라는 말을 종종 하지요? 그것을 생각하면 금방 이해될 것입니다.
번역이 왜 어려운가? 바로 이런 상황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상적인 의사소통을 한다고 할 때는 늘 이렇게 말하는/글 쓴 사람이 갖고 있는 배경과 상황과 의도가 말과 글 속에 베여있습니다.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이 지금 살아 있거나,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불분명하면 언제든지 달려가 재확인하면 쉽게 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오래 전에 기록해서 저자가 죽고 없으면 곤란할 때가 많이 생깁니다. 게다가 시간과 공간이 엄청나게 차이나고 또 누가 쓴지도 잘 모르는 고전이나 저자가 엄청 많은 성경과 같은 책을 번역할 때 그 어려움은 몇 배나 증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