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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해야할 선교이야기를 하기 전에

성경활용
작성자
제순 정
작성일
2019-02-25 11:52
조회
274
교회가 점점 약화되고 있고, 선교 열풍도 사그러져 가고 있는 상황인데, 선교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선교는 변화하는 세상과 무관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주도하신다는 신앙(?) 때문에 용기를 갖고 이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이번에 아릴락 웹이 또 새롭게 개편되는 바람에 막 시작했던 선교이야기를 삭제하고, 짤막한 에피소드 중심으로 하나씩 소개하려고 한다. 어떤 이야기든지 이야기하려는 사람을 소개하기에,  조금 쑥스럽지만 나에 대한 소개를 하려고 한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싹뚝 자르고, 선교 경력만 본다면, 만 30세인 1986년 말에 성경번역선교사(GBT)로 사랑의교회(당시 옥한흠 목사)에서장기 선교사 1호로 파송 받았다. 1987년 싱가폴에서 언어학 훈련을 마치고, 아프리카 지역으로 성경번역 사역을 하려고 애 쓰다가, 여러가지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다. 원했던 아프리카를 포기하고,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고, 원하지도 않았던 파푸아뉴기니에 들어가, 메께오 부족을 위해 성경번역을 하였다. 1999년 6월 26일 한국 선교사로서는 처음으로 소수부족에 들어가 알파벳을 만들고 신약 성경을 완역하여 봉헌할 은혜도 가졌다.  보이는 사진이 바로 1999년 6월 26일 신약 봉헌식을 마치고, 번역 동역자인 아이사, 아메, 빅토와 찍은 것이다.

한국의 경제위기(IMF, 1997년)와 기타 여건으로 풀러신학대학원 박사과정을 학비 전액 장학금으로 공부를 할 기회를 가졌고, 2003년에 시가서 번역에 관한 내용으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2002년 7월 공부를 마치고 파푸아뉴기니로 돌아가 구약번역을 하고 있었지만, 학위 취득 후 2003년 7월부터 2005년 6월까지 마닐라에 있는 국제 SIL(Summer Institute of Linguistics)과 함께 운영하는 AGS(Alliance Graduate School)에서 번역교수로 섬겼다. 그 후 선교 정책과 전략의 변화로, 한동대 안에 ‘아시아언어문화연구원(ARILAC, Asia Research Institute of Language and Culture)이 세워져 2005년 7월 한국으로 오게 되었고, 지금까지 초대 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아릴락에 관해선 이 웹페이지에 자세히 나와 있어서 생략한다.

아릴락 원장으로서 아릴락 기관을 맡고, 성경번역선교사(GBT), 국제 SIL 번역자문위원, 한동대에서 가르치는 교수로서 한국을 비롯하여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에 다니면서 번역 자문과 강의를 하고 있다. 1984년부터 나의 삶을 아내인 홍정옥 선교사와 공유하고 있고, 첫 애인 딸(30세)이 미국인하고 결혼하여 오하이오에 살고 있고, 둘째인 아들(24)은 2017년 3월 초에 해병대를 제대할 예정이며, 막내 아들(20)도 금년 11월 14일 공군에 입대할 예정이다. 이 쯤에서 나의 소개를 마치고 다음 호 부터 나의 사역과 선교를 돌아보면서 함께 이야기해 보련다.